남산4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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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동은 신라시대에는 달구화현과 대구현에 속했고 고려시대 경산부, 조선시대대구부 서상면으로 칭하여 오다가 1914년 남산밑에 있다하여 남산 정이라 하였으며, 1947년에 남산동이라는 지금의 명칭을 사용하게 되었다.
현재 동사무소 동편에 위치한 남산어린이공원 자리에는 시립화장장, 공동묘지가 있었으며, 광복후 원각사라는 절이 건립되었고 원각사 주변에는 토기와 기와 굴이 여섯군데나 설치되어 시내 목조와가 건축에 큰 몫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MBC드라마[상도]에서 방영된 유기 가내공업도 한때는 이곳을 중심으로 성행했으며, 일본식 건축물로 웅장하게 지어졌던 시립화장장은 1699년에 수성구 고모동으로 이전하였고, 1.4후퇴시 피난민들이 산던 천막촌은 화재로 시실된 후 판자촌으로 바뀌었다가 현재는 서민들의 보금자리인 까치아파트로 재개발되었다
70년대에는 양말소매상들이 모이기 시작하여 양말골목이 형성되었으며 현재 70여개의 점포가 중구의 명물골목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90년대 대구의 대단지아파트를 대표하는 1.058세대의 보성황실아파트건립을 시작으로 휴먼시아 1.2단지와 그린아파트가 들어 선 남산4동은 중구 인구의 17%가 넘는 가장 큰 동이면서, 단독주택과 공동주택, 상가와 주거지, 전통과 현대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주민들의 지역사랑과 주인의식이 어느 곳보다 높은동이다.
면적(㎢) 0.45
인구(명) 13,488
세대수 4,400
통/반 26/154
주소 남산로1길 42(남산동)
전화 053)661-3311
팩스 053)661-3461
현재 동사무소 동편에 위치한 남산어린이공원 자리에는 시립화장장, 공동묘지가 있었으며, 광복후 원각사라는 절이 건립되었고 원각사 주변에는 토기와 기와 굴이 여섯군데나 설치되어 시내 목조와가 건축에 큰 몫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MBC드라마[상도]에서 방영된 유기 가내공업도 한때는 이곳을 중심으로 성행했으며, 일본식 건축물로 웅장하게 지어졌던 시립화장장은 1699년에 수성구 고모동으로 이전하였고, 1.4후퇴시 피난민들이 산던 천막촌은 화재로 시실된 후 판자촌으로 바뀌었다가 현재는 서민들의 보금자리인 까치아파트로 재개발되었다
70년대에는 양말소매상들이 모이기 시작하여 양말골목이 형성되었으며 현재 70여개의 점포가 중구의 명물골목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90년대 대구의 대단지아파트를 대표하는 1.058세대의 보성황실아파트건립을 시작으로 휴먼시아 1.2단지와 그린아파트가 들어 선 남산4동은 중구 인구의 17%가 넘는 가장 큰 동이면서, 단독주택과 공동주택, 상가와 주거지, 전통과 현대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주민들의 지역사랑과 주인의식이 어느 곳보다 높은동이다.
면적(㎢) 0.45
인구(명) 13,488
세대수 4,400
통/반 26/154
주소 남산로1길 42(남산동)
전화 053)661-3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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